2008. 7. 21. 15:20

[펌?] 커피가게 - 박이추

보헤미안에서 원두를 구입하면 택배박스 안에 글이 하나씩 실려 오네요.
생각난 김에 베껴 두려고 합니다.

아래 글은 강릉 보헤미안 박이추 선생님이 적으신 글입니다.
원두 주문시 끼워주신 글이 맘에 들어 남겨두고자 합니다.
나는 몰래 몰래 손님들을 훔쳐본다.
어떻게 커피를 마시는지 설레임으로 두려움으로 몇 번의 눈빛을 보낸다.

가게문을 나서는 뒷모습과 함께 손님이 비워낸 커피 잔까지.

한낱 음료에 그 정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고, 정직과의 직면(直面)이 아닐까?

커피를 뽑는다는 것은 뜨거운 물 속에서 변화되는 모습을 그저 조용히 지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과의 일치점에서 만났을 때 완성된 훌륭한 커피가 된다. 잘 뽑아야 한다는 생각도 욕심이다. 커피는 뽑는 사람의 기분이나 그 사람의 성격까지 녹아내리는 예민함을 가지고 있어 놀랍기도 하다.
그리고 커피를 뽑는다고 하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뽑는다"가 아닌 "맛을 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커피와 관계된 모든 기쁨의 시작이다. 따라서 커피의 맛도 그 기쁨도 모르고서 커피를 뽑는다는 것은 공허한 것이다.

정말로 맛을 이해하고 기대해 주는 손님은 본래 과묵(寡默)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안심이다. 커피는 그 안심(安心)이 있을 때야 말로 진상(眞相)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종과 국경을 떠난 세계인의 커피가 되는 것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이나 여러 미디어를 통해 손쉽고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앞선 지식이 실제로 맛내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모방을 통해 창조를 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원두의 사용량이나 뽑는 방식 등을 똑같게 하는 것은 체인점의 메뉴얼과 같다. 커피는 "커피"라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주 약간의 변화에도 커피가 드러내는 모양새는 아주 달라진다. 즉 결정적인 것은 없고 반사적인 것이 커피가 가진 개성이다.

프로는 나름의 감각과 축적된 경험으로 그 가게의 스타일을 확립해야 한다.
커피가게라는 것은 맛과 손님과의 진검승부이다. 손님이 "아, 좀 더 마시고 싶다"라고 아쉬움이 남을 즈음에 커피는 다 마셔진다. 마신 후에는 희미한 단맛의 여운이 남는다. 여운을 남기는 커피를 만드는 것이 프로의 임무이다. "맛있는 커피를 마신다"와 "맛있게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다르다.
다만 "마신다"라는 것에 큰 행복과 만족을 느끼고, 그 마신다는 기쁨은 사람을 아주 풍요롭게 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맛없는 커피를 만나게 되면 화가 난다.

나의 즐거운 훔쳐보기는 오늘도 계속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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